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이 동시대 미국 사회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그는 그동안 과거를 배경으로 미국의 욕망과 균열을 탐구해왔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현재의 정치적 긴장과 사회적 갈등을 직접적으로 조명합니다. 이 작품은 장르적 에너지와 가족 서사를 결합해 복합적인 정서를 만들어냅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의 시대적 배경 변화, 인물과 연기, 그리고 정치성과 감정의 결합이라는 세 가지 측면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시대적 배경의 변화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은 이전 작품들에서 주로 20세기 미국의 특정 시기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해왔습니다. 그러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명확히 현대 미국을 무대로 설정합니다. 영화는 캘리포니아 사막의 이민자 구금시설을 급습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며, 이민 정책과 국가 권력의 폭력성이라는 동시대적 이슈를 전면에 배치합니다. 작품은 특정 연도나 정권을 직접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지만, 인종 갈등과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 사회 내부의 분열을 암시하는 장면들을 통해 오늘날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불안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과거를 경유해 현재를 비추던 기존 연출 방식과 달리, 현재를 직접 응시하려는 감독의 의도를 보여줍니다.
또한 촬영 방식 역시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있습니다. 비스타비전 포맷을 활용해 화면의 밀도와 질감을 강조하며, 사막의 먼지와 인물의 표정, 공간의 깊이를 생생하게 담아냅니다. 이는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니라, 현실의 감각을 강화하려는 선택으로 보입니다.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은 긴장감 있는 타악 리듬과 불안정한 선율을 통해 현대 사회의 혼란을 청각적으로 보완합니다. 시각과 청각 요소가 결합되면서 영화는 단순한 정치적 배경 설명을 넘어, 동시대의 공기를 체험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여기에 더해 영화는 특정 사건을 재현하기보다, 반복되어 온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상징적으로 압축합니다. 구금시설이라는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국가 권력이 개인을 통제하는 시스템의 축소판으로 기능합니다. 사막이라는 배경 또한 고립과 단절의 이미지를 강화하며, 인물들이 처한 상황의 절박함을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감독은 과거를 향한 향수나 미화 대신, 현재의 균열과 갈등을 있는 그대로 노출합니다. 이는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위치를 되묻게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본 작품은 단순히 배경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감독의 문제의식이 현재 시점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인물과 연기
이 영화의 중심에는 밥 퍼거슨과 그의 딸 윌라의 관계가 놓여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과거 혁명적 이상을 품었던 인물이지만, 현재는 혼란과 죄책감 속에서 방황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합니다. 그는 무능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딸을 보호하려는 의지와 책임감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입니다. 이러한 양면성은 캐릭터를 단순한 실패자로 규정하지 않게 하며, 관객이 인물의 선택과 갈등을 이해하도록 만듭니다. 정치적 갈등이 전면에 놓여 있음에도, 이야기가 인간적 설득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이러한 인물 구축에 있습니다.
딸 윌라 역의 체이스 인피니티는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캐릭터의 복합성을 전달합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숙한 태도를 보이며,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쌓인 피로감과 애정을 동시에 드러냅니다. 숀 펜이 연기한 스티븐 록조 대령은 과장된 악인이 아니라, 제도적 권력을 체화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그는 큰 목소리 대신 차분하고 냉정한 태도로 위압감을 형성하며, 체계적인 폭력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초반부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퍼피디아 역의 테야나 테일러 역시 극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 더해 인물들은 단순한 선악 구도로 나뉘지 않습니다. 밥은 이상을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도피적 선택을 반복하며, 록조 대령은 명확한 악의를 드러내기보다 제도적 언어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합니다. 이러한 설정은 인물들을 상징적 도구로만 소비하지 않고, 시대 속에서 형성된 존재로 제시합니다. 특히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정치적 갈등의 중심에서 인간적 감정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보여줍니다. 딸은 아버지의 실패를 인지하면서도 완전히 등을 돌리지 않으며, 아버지 역시 자신의 한계를 알면서도 보호자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미묘한 감정선이 영화의 중심을 지탱하며, 거대한 사회적 문제 속에서도 개인의 이야기가 흐려지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합니다.
정치성과 감정의 결합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정치적 색채가 가장 뚜렷한 영화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민자 구금시설, 백인 우월주의적 성향을 띤 집단, 권력자의 왜곡된 가족 집착 등은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러나 영화는 특정 이념을 직접적으로 설교하지 않습니다. 대신 풍자와 장르적 장치를 활용해 메시지를 전달하며, 관객이 스스로 해석하도록 여지를 남깁니다. 유머와 폭력이 교차하는 연출은 불안과 긴장을 동시에 조성하며, 시대의 불안정성을 형식적으로 반영합니다.
중반부에 삽입되는 스틸리 댄의 ‘Dirty Work’는 인물의 심리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약물에 의존하며 무기력하게 하루를 버티는 밥의 모습 위에 흐르는 이 곡은 자조적이면서도 씁쓸한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이는 영화가 정치적 분노에만 머무르지 않고, 한 인간의 실패와 회복 가능성을 함께 다루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상영 시간은 2시간 43분으로 긴 편이지만, 후반부 도심 추격 시퀀스와 사막 장면은 높은 밀도로 전개되어 긴장감을 유지합니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은 정치적 메시지를 감정 서사와 분리하지 않습니다. 감독은 거대한 담론을 인물의 일상적 선택과 결합시키며, 정치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국가 권력과 이념적 갈등이라는 거대한 틀 속에서 더욱 선명해집니다. 사랑과 책임, 실패와 회복이라는 주제가 정치적 상황과 교차하면서 영화는 단순한 고발을 넘어선 정서적 울림을 형성합니다. 결국 이 작품은 분열된 사회 속에서도 개인적 유대와 다음 세대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는 감독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자, 이 영화가 지닌 지속적인 여운의 근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